「완주 남계리 유적」 국가지정유산 사적 지정 예고
발표 개요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2026‑06‑17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위치한 「완주 남계리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이번 지정 예고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사건(신해박해 1791년, 신유박해 1801년) 때 순교한 윤지충·권상연·윤지헌 등 핵심 인물들의 유해와 관련 유물이 확인된 묘역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적 발굴 과정
남계리 유적은 오랜 구전으로 천주교 묘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곳이었습니다. 2021년 3월, 천주교 전주교구가 주관한 무연고 무덤 이장 작업 중에 최초로 현장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국가유산청이 주관한 정밀 발굴조사에서는 피장자의 이름·출생연대가 새겨진 ‘백자사발 묵서명 지석’이 출토되었고, 수습된 유해에 대한 조직학적 분석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윤지충·권상연·윤지헌의 묘임이 명확히 밝혀졌습니다.
순교자와 유물
- 윤지충·권상연: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인물로,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 윤지헌: 신유박해(1801년) 때 순교한 인물이며, 두 번째 대규모 박해의 대표 순교자 중 하나입니다.
- 백자사발 묵서명 지석: 망자의 인적 내용을 기록한 표지(지석)로, 백자 사발에 묵서명(묵서명) 형태로 새겨져 있습니다.
발굴 결과, 총 21기의 분묘가 3차례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봉분의 크기가 클수록 조성 시기가 이른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신해박해와 신유박해 사이에 약 10년 간격을 두고 핵심 순교자들이 매장된 뒤, 신앙 공동체 구성원이 추가 매장된 흐름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의미와 보전 계획
완주 남계리 유적은 전통적인 유교 중심 사회에 학문으로 유입된 천주교가 신앙으로 자리 잡으며 겪은 갈등과 박해의 전 과정을 한 공간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윤지충·권상연의 묘역은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조선 후기 천주교 전파·전개 과정과 박해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적 지정 예고를 통해 유적 보전·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향후 학술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연계해 지역사회와 신앙 공동체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확인 내용 표
| 구분 | 확인할 내용 |
|---|---|
| 위치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
| 지정 예고 일자 | 2026‑06‑17 |
| 주요 사건 | 신해박해 1791년, 신유박해 1801년 |
| 순교자 | 윤지충·권상연·윤지헌 |
| 발굴·분석 기관 | 국가유산청, 천주교 전주교구 |
| 발굴 결과 | 21기의 분묘, 3차례 조성, 백자사발 묵서명 지석 출토 |
원문에서 함께 볼 부분
- 보도자료 원문 전체 URL: https://www.khs.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6157§ionId=b_sec_1&pageIndex=3&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
- 발굴 조사 시점 및 참여 기관(2021년 3월, 천주교 전주교구·국가유산청)
- 순교자 이름·사건 연도(윤지충·권상연 1791년, 윤지헌 1801년)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맥락 짚기
국가유산청 관련 발표는 제목의 결론보다 대상, 시행 시점, 담당 기관의 후속 안내를 함께 봐야 맥락이 분명해집니다.
- 발표일과 실제 적용일이 다를 수 있어 날짜 표현을 따로 봅니다.
- 개인, 사업자, 기관 중 누구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내용인지 구분합니다.
- 신청, 단속, 지원, 설명자료 중 어느 단계의 소식인지 확인합니다.
본문은 원문과 보조 참고 자료 3개를 대조해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참고 자료
본문은 아래 원문과 공개 자료를 기준으로 편집했습니다. 날짜, 신청 조건, 운영 여부처럼 바뀔 수 있는 정보는 원문에서 다시 확인하세요.
편집 기준
공식 발표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독자가 확인해야 할 대상, 시점, 절차, 후속 확인 경로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했습니다.